100권의 책을 스캔했다, 그리고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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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 2026

나는 왜 책을 읽지 않게 되었을까

책을 읽는 일은 즐겁다. 아니, 즐거웠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책에 자주 손이 가지 않는다. 내 주변에는 손만 뻗으면 즉각적인 자극을 주는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책을 읽어야 하는데’라는 부채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독서는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난 후부터 활자를 읽는 행위는 일종의 ‘업무’가 되어버렸다. 쏟아지는 튜토리얼, 비디오 강의, 블로그 포스트, 오픈소스 코드까지 익혀야 할 지식이 너무 많았다. 업무를 위해 하루 종일 텍스트와 씨름하고 나면, 남는 시간에 또다시 무언가를 읽을 심리적인 여유가 없었다.

여기에 숏폼을 비롯한 짧은 호흡의 콘텐츠가 대세가 되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나는 스스로 숏폼 콘텐츠를 즐기지 않는다고 자부해 왔지만, 학습을 위해 AI를 활용하면서 나도 모르게 ‘짧은 호흡의 정보 습득’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긴 글을 진득하게 읽고 스스로 정리하기보다, 링크나 영상을 던져주고 “요약해 줘”라고 프롬프트부터 입력하는 습관이 생겼다.

어느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직접 지식을 씹어 삼키고 내 것으로 소화하는 능력이 퇴화하고 있다는 기분. 나름 지식 노동자라 자부하면서, 스스로 내 가치를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애용하는 Obsidian 의 제작자 Steph Ango(kepano)가 말한 것처럼 자신의 이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꼴이다.

핑계로 미뤄두었던 ‘독서’가 다시 간절해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책은 매체의 특성상 내용을 받아들이고 갈무리하기까지 오롯이 나의 노력을 요구한다. “예전엔 독서광이었어”, “지금도 책을 좋아해”라고 말만 하는 ‘독서광 호소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책을 부수고 완벽한 디지털 서재를 짓다

나는 출퇴근길에도, 자투리 시간에도 가볍게 책을 읽겠다는 명목으로 ‘북스캔’을 해 왔다. 일반 서적은 전자책으로 종종 출간되지만, 곁에 두고 봐야 할 크고 무거운 개발 서적들은 전자책으로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오래전 당근마켓에서 구형 북스캐너와 재단기를 들인 이후로 종종 북스캔을 해 왔다. 올해는 짐을 줄이겠다는 미니멀리즘의 핑계까지 더해 공격적으로 책의 결합부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한 장씩 넘겨가며 사진을 찍는 비파괴식 스캔 대신, 책을 낱장으로 분해해 기계에 물려버리는 파괴식 스캔을 택했다. 종이책을 넘기는 아날로그적 감성은 사라졌지만, 대신 내게는 아이패드 미니, 맥북, 대형 모니터 등 언제 어디서나 열어볼 수 있는 약 100권 분량의 ‘나만의 디지털 서고’가 생겼다.

본래 이 글의 초안에는 이 대목에서 스캔 화질을 높이기 위해 어떤 앱을 썼는지, 100권이 넘는 파일의 메타데이터를 구글 시트로 어떻게 깔끔하게 정리했는지 등 기술적인 내용을 잔뜩 작성했었다.

하지만 글을 수정하며 그 내용들을 과감히 백스페이스로 지워버렸다. 돌이켜보니 그 기술적인 디테일들은 내가 이 글을 통해 다루고 싶었던 문제의 본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스캔에 관심 있는 분들은 언제든지 메일이나 DM으로 연락 주시길)

방치된 디지털 서재

스캔 품질을 높이고 파일명을 각 잡고 정리할 때만 해도, 내 아이패드 미니는 완벽한 ‘독서 전용 머신’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100권의 책이 든 아이패드를 들고도 나는 여전히 책을 읽지 않았다. LCD 화면은 책에 대한 몰입을 방해했고, 기기에 깔린 다른 수많은 앱들은 끊임없이 내 주의력을 훔쳐 갔다. 혹시 화면이 작아서인가 싶어 더 큰 태블릿을 들여보기도 했지만, 세심하게 스캔본을 비교해 보며 샀던 그 커다란 태블릿은 몇 달째 식탁 위에서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틀어주는 ‘영상 머신’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독서를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쌓여있던 책을 정리하고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 자체만을 즐기고 있었다는 것을. 어느새 나는 아직 스캔하지 않고 모셔둔 몇 권의 종이책에 더 손을 뻗고 있었다. 지난 몇 달간 내가 끝까지 다 읽은 책은 역설적이게도 모두 물리적인 종이책이었다.

도구가 아니라, 시간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

북스캔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집안의 여유 공간, 그리고 원할 때 언제든 파일을 꺼내볼 수 있다는 자유. 그것뿐이었다. 가장 중요한 ‘독서하는 삶’은 여전히 요원했다.

처음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독서를 하지 않는 나태함을 고쳐야겠다’는 식의 반성문을 쓰려 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 문제는 단순한 의지력 부족이나 통제력 상실이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시간이 남으면 무언가를 하겠다’는 나의 수동적인 태도에 있었다.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나는 으레 비디오 스트리밍 사이트를 열어 유튜브나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퇴근 후 집에서 일지를 쓰고 남는 시간에도 가벼운 웹서핑으로 밤을 채울 뿐, 개인적인 개발 작업은 손을 놓은 지 오래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완벽하게 비어있는 여유 시간이 나에게 ‘주어지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런 시간은 저절로 오지 않았고, 잠깐씩 붕 뜨는 자투리 시간들은 가장 쉽고 자극적인 매체들에게 속절없이 빼앗겼다. 무언가를 밀도 있게 읽고 소화하는 수고로움을 피하기 위해 시스템 탓, 기기 탓을 하며 ‘완벽한 독서 환경’ 뒤에 숨어있었던 셈이다.

벌써 2026년도 두 달이 지나갔다. 거창한 목표는 내려놓기로 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100권의 책 읽기’ 같은 다짐이 아니라, 삶과 시간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시간이 있을 때 책을 읽어야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이 파편화된 시간들을 내가 주도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라고 문제의 본질을 다시 설정했다.

당장 내일 출근길에 습관적으로 영상을 트는 대신, 미뤄뒀던 북마크나 스캔해 둔 PDF를 한 번이라도 열어보는 것. 그것이 내가 내 시간을 직접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현실적인 첫걸음일 것이다. 나에게 독서는 타인의 밀도 높은 경험을 효과적으로 흡수하는 훌륭한 도구이자, 그 자체로 삶의 즐거움을 주는 수단이다. 무기력하게 흩어지던 시간을 다시 내 것으로 엮어내는 그 작은 변화에, 내가 공들여 만든 이 100권의 전자책 도서관이 기꺼이 든든한 디딤돌이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