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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ote - 사무실 따윈 필요 없어!’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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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 on Rails(이하 레일즈) 를 쓰는 사람이라면 DHH(데이비드 하이네마이어 한슨)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레일즈 프레임워크의 창시자일 뿐 아니라 거침 없는 입담과 자신만의 확고한 방식으로 레일즈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개발자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그냥 DHH의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점은 ‘레일즈의 창시자’ 정도밖에 없었다. 덧붙이면 그 전에는 PHP로 개발을 하다가 너무 답답해하던 중 루비라는 언어를 접하고, 사랑에 빠져(말 그대로이다. 이는 DHH가 2017년 1월에 Quora에서 진행한 AMA에서 사용한 표현이다.) 레일즈를 개발하게 되었다는 것 정도를 알고 있었다.

그러다 위에 링크한 DHH의 AMA를 읽게 되었고, 글을 다 읽고 나니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배울 점이 있다면 배우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접하게 된 대표적인 저서가 이 Remote이다.

이 책은 ‘원격근무’ 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소개하면서 흔히 알려진 오해들을 바로잡고, 어떤 방식으로 원격근무를 적용하면 좋을 지 안내하는 가이드 역할을 하는 책이다. 실제로 DHH가 설립한 회사 37signals(현 Basecamp, 이들이 운영하고 있는 원격 근무 서비스의 이름과 같다)는 전면적인 원격 근무 체제를 도입하고 있고, 아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회사 중 하나이다.

‘원격 근무는 회사에 가지 않고 집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관리자의 통제가 힘들다’라는 게 일반적으로 원격 근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관리자의 통제가 정말로 필요한 경우는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근태 관리인가? 아니면 생산성인가? ‘관리자가 직접 직원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통제가 힘들다’ 는 것은 근태 위주의 생각이고, 근로자가 자신이 가능한한 최적의 환경에서 최고의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작업방식으로 회사 일에 기여를 하면 자연스레 회사와 근로자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

더불어 출퇴근 시간으로 하루에 일정 시간을 소비하고, 시간 뿐 아니라 출퇴근 지옥 속에서 정신력까지 소모하는 생활을 살아가는 시대에 ‘출퇴근 문제’를 도려내면 삶이 얼마나 편하게 바뀔 지 상상해보라. 저절로 편안한 기분이 든다.

요즘은 다양한 도구가 많이 개발되어 있어서(Basecamp, 각종 메신저, 구글 닥스 등) 세계 각지에 떨어진 사람들도 언어만 통하면 서로 협력하여 업무를 진행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물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언어가 통하는게 중요하다. 해외의 회사에 원격근무자로 취직을 한다 하더라도 주로 영어 쓰기가 큰 장벽이 될 것이다.

원격근무자를 고용하는 회사에서 고려할 사항 뿐 아니라 원격근무로 일하는 사람도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여러가지 있다. 보통 집에서 혹은 근처 카페에서 작업을 한다고 하면 딴 짓을 하거나 게으르게 행동하여 생산성이 떨어질까 걱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이 책은 ‘과도하게 일에 몰입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한다. 나 자신도 비슷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 크게 공감되었다. 간단한 작업을 돕고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 카페에서 화장실 한번 가지 못하고 5시간을 앉아있던 뒤에야 간신히 일어날 수 있었다. 회사에서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몸을 일으켜 움직이는게 쉬웠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원격근무를 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동기’임을 강조한다. 관리자 입장에서도 원격근무자의 업무 성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에 주어진 업무가 제대로 구성되어있고 동기를 부여하는 업무인지 확인하라고 말하고 있고, 원격근무자에게도 스스로를 탓하기 보다 근무환경을 다시 한 번 살펴보라고 권한다.

겉으로 보기엔 형태가 달라 보이지만 거대한 오픈소스 프로젝트도 원격근무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얼굴도 마주한 적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완성시켜나가는 모습은 경이롭다.

우리가 개발한 웹프레임워크인 루비온레일스는 십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새로운 기능을 넣고 코드 품질을 개선하면서 진화시켜왔다. 이는 전 세계 십여 개 국가, 수백 개 도시에서 3천 명이 넘는 개발자들(이들은 서로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이다)이 오랜 기간 코드를 발전시킨 결과다.

원격근무를 도입하는 과정에 의심이 들거나 장애물을 만날 때는 이렇게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 “전 세계의 3천 명이 넘는 개발자들을 관리하고 조율하는 프로젝트도 있는데, 이 정도쯤이야!” 아마 골치 아픈 문제가 곧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 p183, p184

모든 직종이 원격근무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개발자라는 직업은 지금 시대에 원격근무를 하기에 가장 탁월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출근하러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아 집에 돌아가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삶 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진정 즐기면서 회사와 함께 상생할 수 있도록 원격근무를 적절히 도입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는 모습이 기대된다. 나 또한 원격근무라는걸 제대로 해보고 싶다.